12개 읍·면의 행정리
같은 마을 사람도
서로 다른 길에 섰습니다
1948년 늦가을, 군인과 경찰은 바닷가와 한라산 사이에 있는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게 집을 떠나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당시 기록은 이 명령을 ‘소개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때에 명령을 들은 것도, 같은 마음으로 산에 남거나 내려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주 마을의 절반이 넘는 곳에서
주민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보고서는 당시 165개 마을 가운데 87개 마을의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고 적었습니다. 그중 62곳은 중산간 마을이었습니다.
주민이 옮겨 간 87곳 가운데
어디에 적혀 있나요? ·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18~119쪽
왜 산에 남았나요?
왜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 내려갔나요?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이유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여러 상황이 겹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바닷가 가까운 마을로 내려간 사람
집을 떠나 바닷가 가까운 마을이나 친척 집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을 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려간 뒤에도 ‘산에 간 사람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붙잡히거나 희생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35~137·156쪽내려가라는 명령을 못 들은 사람
일부 마을에는 내려가라는 명령이 오지 않았습니다. 군인과 경찰이 명령보다 먼저 도착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총을 쏜 곳도 있었습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18~119쪽군인과 경찰을 피해 숨은 사람
마을에서 총을 쏘고 집을 불태우는 일을 겪은 뒤, 무서워서 바닷가 가까운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산과 숲에 숨은 주민도 있었습니다. 뒤에 발견되어 희생된 경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35~136쪽무장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사람
밤에 무장대가 마을을 장악하면 일반 주민은 먹을 것을 내놓거나 시위에 나오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겉으로 같은 행동을 했어도 스스로 한 일인지, 겁이 나서 따른 일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36~137쪽자기 뜻으로 어느 한쪽을 도운 사람
일부 학생은 무장대를 돕기 위해 돈을 모아 산으로 올렸습니다. 반대로 다른 학생 20여 명은 군과 함께 마을을 돌며 산에 있는 사람에게 내려오라고 알렸습니다. 주민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560쪽이유가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
이름과 피해 사실만 남고, 왜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빈칸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추측으로 어느 편이라고 정하지 않습니다.
이 페이지의 자료 확인 원칙내려가도 위험했고,
남아도 위험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지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하지만 그 한 가지만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붙잡힌 사람도 있었습니다
- 친척 집이나 수용소에서 지냄
- 가족 중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감시받음
- 스스로 신고하면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희생되거나 감옥으로 보내짐
곧 ‘편’은 아닙니다
피난한 사람도,
무장대를 도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 내려가라는 명령을 듣지 못해 마을에 남음
- 군인과 경찰이 무서워 산과 숲에 숨음
- 무장대의 강요를 받거나 자기 뜻으로 도움
결과보다 먼저
그 사람이 한 일을 봅니다
- 1
명령을 들었나요?명령이 제때 왔는지부터 확인합니다.
- 2
무슨 행동을 했나요?피난, 연락, 식량 제공, 무장 활동을 나누어 봅니다.
- 3
스스로 했나요?자기 뜻인지, 협박과 강요 때문인지 구분합니다.
- 4
어떤 자료가 남았나요?당시 문서와 여러 사람의 말을 서로 비교합니다.
이 설명을 만든
자료의 정확한 위치
- 118~119쪽165개 마을 중 87곳의 주민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감 · 일부 마을은 명령을 듣지 못함
- 135~137쪽두려워 산에 숨은 주민 · 강요된 식량 제공 · 내려온 뒤의 가족 단위 피해
- 145~156쪽스스로 신고하면 살려 주겠다는 말과 실제 결과 · 바닷가 마을로 내려온 뒤의 희생 사례
- 560쪽일부 학생이 무장대를 도운 일과 다른 학생이 군을 도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