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쏘아 살해
4월 3일 외도지서의 선우중태 순경과 남원지서의 방성화가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위미리에서는 현봉협의 어머니가 불타는 집에서 물건을 꺼내려다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제주의 봄은 오래도록,
그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주 4·3, 진실을 찾는 여정
남겨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록을 따라
아픈 어제를 밝히고, 더 나은 내일로 걸어갑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곳에서,
우리의 봄은 다시 시작됩니다.
‘무장봉기’라는 짧은 말만 보면 실제로 누가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무장대가 누구를 골라 공격했고 주민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정부 보고서에 나온 장소·숫자·증언으로 살펴봅니다.
정부 보고서 438쪽의 ‘무장대의 살상행위’, 곧 사람을 죽인 일을 다룬 부분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과 서북청년회·대동청년단 같은 우익단체 사람이 공격 대상이 됐습니다.
우익 인사뿐 아니라 그 배우자와 어린 자녀까지 공격했습니다.
1948년 11월 뒤에는 무장대를 돕지 않는다고 본 마을 전체를 공격했습니다.
주민이 실제로 어느 편인지 가리지 않고 죽였습니다. 집을 불태우고 먹을 것도 가져갔습니다.
이 부분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희생 사례가 나옵니다. 자극적인 소문은 빼고, 보고서가 방법까지 밝힌 사례만 적었습니다.
4월 3일 외도지서의 선우중태 순경과 남원지서의 방성화가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위미리에서는 현봉협의 어머니가 불타는 집에서 물건을 꺼내려다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남원지서에서 붙잡힌 고일수 순경은 칼로 살해됐습니다. 두모리의 박정생은 불을 끄라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가 일본도로 살해됐습니다.
세화리에서 임신 중이던 고형옥은 철창에 찔린 뒤 후유증으로 1951년에 숨졌습니다. 한성숙은 죽창에 찔리고 불붙은 집에서 화상을 입은 뒤 숨졌습니다.
4월 3일 화북지서가 불타면서 밤에 안에서 일하던 직원이 숨졌습니다. 남원·위미·태흥 사건의 피해자 명단에는 생후 5개월 된 아이 한 명의 사망 방식이 ‘방화살해’로 적혀 있습니다.
두모리에서는 한 집에 불을 지른 뒤 주민에게 나와서 불을 끄라고 했습니다. 밖으로 나온 김경석과 박정생이 살해됐습니다. 김경석의 정확한 사망 방법은 보고서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1952년 제주방송국을 습격한 무장대는 방송인 김두규·채종식·김석규를 끌고 갔습니다. 세 사람은 며칠 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와 누가 공격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보고서가 가해 조직까지 밝힌 사건과, 복장만 확인한 사건을 나누어 봅니다.
1951년 기록에서 무장대 사령관 허영삼은 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도 함께 맡았습니다. 1952년 5월에는 김성규가 이끄는 무장대 65명이 남아 있었다고 기록됐고, 그해 9월 보고서는 ‘무장대’가 군경처럼 꾸미고 방송국을 습격했다고 적었습니다.
정부 보고서는 무장대가 국군과 경찰인 것처럼 꾸몄다고 적었습니다.
새벽에 제주방송국에 들어가 전화기와 방송용 시계를 빼앗았습니다.
김두규·채종식·김석규를 끌고 갔고, 세 사람은 며칠 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정부 보고서는 9월 16일 새벽 2시쯤, KBS 추모비는 9월 15일 새벽으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이트는 9월 15~16일로 함께 표시합니다.
무장대가 국군과 경찰처럼 꾸민 뒤 방송인 세 명을 납치하고 살해한 사실이 여러 기록에 함께 나옵니다.
진상조사보고서 342~343쪽바탕 자료: 육군정보국 정기정보보고 제262호 · 제주경찰사 317쪽 · 평화신문 1952년 9월 19일 · 세 사람의 이름은 KBS 제주 9·15 순직 방송인 추모비에서 확인경찰복 차림의 무리가 지서와 면사무소를 공격했고 우익 인사 한 명이 숨졌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무리의 조직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진상조사보고서 206쪽바탕 자료: 미군정 G-2 정기보고 제815호 · 미6사단 G-2 정기보고 제916호경찰복 차림의 무리가 선거 일을 맡은 사람을 죽이고 선거 기록을 빼앗았습니다. 기록은 전날 모슬포의 같은 무리로 보인다고만 적었습니다.
진상조사보고서 206쪽바탕 자료: 미6사단 G-2 정기보고 제916호추가 보고서 557쪽과 654~655쪽에서 확인한 사례입니다. 자료마다 확인한 사람 수가 다를 때는 억지로 하나로 합치지 않았습니다.
추가 보고서에는 무장대가 밤 12시에 함덕지서를 공격해 지서장을 포함한 경찰 7명이 숨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 654쪽미군정 보고에는 경찰 1명과 주민 6명이 숨지고, 주민 1명은 사라졌으며 7명이 끌려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추가 조사에서는 확실히 확인된 경찰 사망자가 1명이라고 범위를 좁혔습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 654~655쪽무장대가 고내리의 세 집안을 골라 공격했습니다. 애월중학원 교사 김봉원 부부와 학생 고시춘 등이 목숨을 잃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 557쪽자료마다 피해자 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 몇 쪽인지 함께 적었습니다.
4월 3일 구엄리에서는 우익 인사뿐 아니라 그 가족도 공격받았습니다. 우익 활동을 하던 문영백의 10대 딸 두 명을 포함해 5명이 숨졌습니다.
장소 상세 기록 보기 →무장대는 길가의 집부터 불태우고 주민을 죽였습니다. 철창과 죽창에 찔린 뒤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도 확인됐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보고서는 희생자 48명을 이름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장소 상세 기록 보기 →남원리와 위미리 등을 한꺼번에 공격해 주민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습니다. 현봉협의 어머니는 불타는 집에서 물건을 꺼내려다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피해자 명단에는 생후 5개월 된 아이 한 명이 ‘방화살해’로 기록돼 있습니다.
장소 상세 기록 보기 →무장대는 집에 불을 지르고 주민에게 나와서 불을 끄라고 했습니다. 밖으로 나온 김경석을 살해했고, 박정생은 일본도로 살해했습니다. 먹을 것을 빼앗고 일부 집도 불태웠습니다.
장소 상세 기록 보기 →마을을 지키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보초를 서던 주민을 죽였습니다. 집집마다 먹을 것을 빼앗고, 바로 내놓지 않은 주민도 죽였습니다. 다만 49명 각각의 사망 방법이 모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장소 상세 기록 보기 →정부 보고서는 몇몇 마을 공격이 군경의 강한 진압과 산으로 피한 사람의 가족을 총살한 일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배경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다른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우익 인사의 가족, 노인, 여성, 먹을 것을 내놓지 않은 주민을 죽인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앞서 있었던 일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보복이었다’는 말로 무장대가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며 물건을 빼앗은 일을 작게 만들지 않습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공격했는지, 누가 희생됐는지 마을마다 계속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