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자료 확인

여러 자료를 비교해
누가 무엇을 했는지 살펴봅니다

누가 언제 만든 자료인지, 보고서 몇 쪽에 나오는지 함께 적었습니다. 자료로 알 수 있는 것과 아직 알 수 없는 것도 나누었습니다.

보고서의 결론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느 쪽에 적혀 있는지와 그 결론에 쓰인 자료도 함께 보여줍니다.

정부 보고서, 추가 조사보고서, 미군 기록, 관계자의 말을 서로 비교했습니다. 여러 자료가 같은 말을 하는지, 아직 자료가 없는 부분은 무엇인지 나누어 적었습니다.

관계자의 말158쪽

19명이 모여 12대 7로 공격을 결정

남로당 제주도당의 정치 책임자 이삼룡은 제주와 각 지역 책임자 19명이 신촌에 모였다고 말했습니다. 12명은 공격에 찬성했고 7명은 조심해야 한다고 했으며, 끝에는 무장공격을 하기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회의에 직접 참석한 사람의 말입니다. 4·3이 갑자기 저절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회의에서 정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로당 내부 기록159~161쪽

준비 기간·군사조직·320명

3월 25일까지 공격을 준비했습니다. 사람·먹을 것·무기·알림 일을 누가 맡을지 나누었습니다. 3월 28일에는 4월 3일 새벽 2~4시에 공격하기로 정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공격 날짜와 시간, 사람, 무기, 맡을 일이 미리 정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부 보고서가 확인한 일167~172쪽

약 350명이 경찰지서 12곳을 한꺼번에 공격

정부 보고서에는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끈 무장대 약 350명이 경찰지서 24곳 가운데 12곳을 한꺼번에 공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누가 4·3의 첫 공격을 시작했고, 그 공격이 여러 곳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보여줍니다.

피해 주민의 말438~442쪽

세화·남원·위미·두모·성읍 주민을 한꺼번에 죽인 일

무장대는 자기들을 돕지 않는다고 본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주민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며 먹을 것을 빼앗은 사례와 주민의 말이 나옵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군과 경찰 때문에 생긴 피해뿐 아니라 무장대가 주민에게 한 폭력도 같은 무게로 기록합니다.

추가 조사보고서562·604쪽

교사·학생까지 이어진 남로당 조직

추가 조사보고서에는 해방 직후 일부 교사가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 참여했다고 나옵니다. 남로당 제주 지도부에도 교사 출신이 적지 않았고 일부 학생도 조직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4·3의 배경은 1947년 하루만이 아닙니다. 해방 뒤부터 교사·학생·마을로 조직이 퍼진 과정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추가 조사보고서654쪽

5·10선거 뒤 경찰·우익단체·주민 공격이 늘어남

정부 보고서는 5·10선거를 막은 뒤 남로당과 유격대가 경찰과 우익단체 사람을 더 많이 공격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가족과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도 희생됐습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정치 목적을 내세운 공격이 싸우지 않은 사람과 가족에게까지 넓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추가 조사보고서68쪽

남로당 제주도당 주요 간부의 책임을 묻는 기준

희생자를 정하는 기준에는 4·3 시작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 주요 간부와 무장대의 높은 책임자를 제외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만 제외하려면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조직을 이끌고 공격을 명령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습니다. 하지만 맡은 일과 행동을 보여주는 자료 없이 일반 주민에게까지 책임을 넓히지 않습니다.

육군정보국·경찰 기록342~343쪽

군인·경찰처럼 꾸민 무장대가 방송인 3명을 납치해 살해

1951년 기록에는 무장대 사령관 허영삼이 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도 함께 맡았다고 나옵니다. 1952년 5월에는 김성규가 이끄는 무장대 65명이 남아 있었고, 그해 9월 ‘무장대’가 국군과 경찰처럼 꾸미고 제주방송국을 습격했습니다. 김두규·채종식·김석규는 며칠 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세 사람의 이름은 KBS 추모비에 적혀 있으며, 정부 보고서와 추모비의 날짜 표기는 하루 차이가 납니다.

이 자료로 알 수 있는 것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조직에서 이어진 무장대가 군경으로 꾸며 민간인을 납치하고 죽인 사건은 확인됩니다. 다만 1948년 모슬포·대정의 경찰복 차림 공격은 문건에 가해 조직 이름이 없어 같은 조직의 일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에서 찾는 곳

어느 자료 몇 쪽인지
바로 확인하세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문서 이름, 날짜, 쪽수를 적었습니다.

  1. 01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152~165쪽 · 167~172쪽 · 438~442쪽 · 535~536쪽

    남로당 조직이 드러난 과정, 무장공격 결정과 준비, 4월 3일 공격, 주민 피해, 서울의 남로당 중앙조직이 지시했는지 살펴본 내용

  2. 02
    제주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68쪽 · 562쪽 · 604쪽 · 654쪽

    남로당 핵심 간부의 책임, 교사·학생 조직, 5·10선거 뒤 무장대의 주민 공격

  3. 03
    미군 ‘제주 남조선노동당 보고’1948년 6월 20일

    전남도당이 제주도당의 바로 위 조직이었다는 기록

    원래 문서와 번역 보기 ↗
  4. 04
    미군 G-2 정기보고 제885호1948년 7월 15일 · CIC 제164호를 가져와 적음

    서울의 남로당 중앙조직이 사건 뒤 제주 상황을 알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한 흔적

    원래 문서와 번역 보기 ↗
  5. 05
    제주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118~119쪽 · 135~137쪽 · 145~156쪽 · 560쪽

    집을 떠나 내려가라는 명령을 들은 때, 산에 남거나 숨은 이유, 무장대의 강요와 자기 뜻으로 도운 일, 바닷가 마을로 내려온 뒤의 서로 다른 결과

    주민의 갈림길 설명 보기 →
  6. 06
    제복을 이용한 속임수 관련 기록진상조사보고서 206쪽 · 342~343쪽

    1948년 모슬포·대정의 경찰복 차림 공격과 1952년 군인·경찰처럼 꾸민 무장대의 제주방송국 습격을 비교합니다. 육군정보국 정기정보보고 제262호, 제주경찰사 317쪽, 평화신문 1952년 9월 19일 보도가 바탕 자료로 적혀 있습니다.

    사건별 확인 수준 보기 →
  7. 07
    도평리 토벌대 위장 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경찰과 특공대가 무장대처럼 꾸미고 주민을 모은 뒤, 확인된 주민 78명을 죽인 사건입니다. 같은 속임수를 어느 쪽이 썼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도평리 사건과 근거 보기 →
  8. 08
    무장대의 살해 방법이 적힌 기록진상조사보고서 170~172·342~343·438~442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6~299쪽

    총격, 칼과 일본도, 죽창과 철창, 방화, 불로 유인한 뒤 살해, 납치 뒤 살해가 사건별로 기록돼 있습니다. 방법이 적혀 있지 않은 피해자는 억지로 추정하지 않습니다.

    방법별 사건과 확인 수준 보기 →
제주 밖 남로당과의 연락 보기 →
자료를 읽는 방법

누가 언제 만든
기록인지도 봅니다

A·B·C·D는 어느 자료가 더 진실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료가 어떤 종류인지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1. A
    사건 당시 만든 기록

    남로당 문서, 미군정 기록, 공격계획 기록을 누가 만들었고 원래 문서가 남아 있는지 봅니다.

  2. B
    사건에 직접 참여한 사람의 말

    남로당 관계자, 군인, 경찰 등 누가 언제 말했는지 적습니다.

  3. C
    마을 주민의 말

    누가 어느 마을에서 겪은 일인지 밝힙니다. 주민이 한 원래 말과 이해하기 쉽게 줄인 말을 나누어 보여줍니다.

  4. D
    나중에 만든 조사보고서

    조사한 사람의 결론이 어떤 문서와 증언을 바탕으로 했는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