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8년 5월 20일 밤 제9연대 군인 41명이 개인 무기와 장비, 실탄 5,600발을 가지고 부대를 떠났습니다. 이탈 군인 일부는 대정지서를 공격해 경찰 피해를 냈습니다. 5월 22일 20명이 붙잡혀 소총 19정과 실탄 3,500발이 회수됐지만, 붙잡히지 않은 21명과 무기는 무장대 쪽 전력을 늘렸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미군 보고와 뒤의 조사에는 이탈 41명, 체포 20명, 회수 소총 19정과 실탄 3,500발이 적혀 있습니다. 한 군인 증언은 이탈자 대부분이 제주 출신이었다고 전하지만, 41명의 이유가 모두 같았다는 뜻은 아닙니다.제9연대 집단 이탈 기록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78~180·216~217쪽 · 미군 G-2 정기보고 제842·844호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653~654쪽
군인 41명은 무엇을 가져갔고, 뒤에 어떻게 됐나요?
이탈 시각, 무기와 탄약, 지서 공격, 체포와 회수, 개인별 동기의 빈칸을 나눠 봅니다.
5월 20일 밤
미군 보고는 21일로 적었지만, 경찰 기록과 현장 증언은 20일 밤 이탈과 지서 공격을 가리킵니다.공식 사건일지도 5월 20일에 군인 41명의 이탈을 놓습니다. 날짜가 다른 까닭은 미군 보고가 밤 사건과 다음 날 상황을 한데 묶었기 때문으로 정부 보고서는 설명합니다.
개인 무기와 실탄 5,600발
41명은 총과 장비, 많은 실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4월 3일 무장대는 총 약 30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군에서 빠져나간 총과 탄약은 무장대의 전투 능력을 크게 늘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대정지서 공격과 경찰 피해
이탈 군인 약 30명이 대정지서를 공격했고, 이어진 이틀 동안 경찰 쪽 사망 6명과 부상 2명이 조사됐습니다.5월 21일에는 인근 무장대가 다시 와 지서 건물을 불태웠습니다. 군인의 이탈과 무장대의 다음 행동을 같은 사람이 모두 한 것처럼 섞지 않습니다.
20명 체포, 21명은 남음
5월 22일 20명이 붙잡혀 소총 19정과 실탄 3,500발이 회수됐습니다.나머지 21명의 무기는 회수되지 않았고 일부는 무장대에 합류했습니다. 이후 무장대의 총기 보유가 늘어난 중요한 경로입니다.
41명의 이유가 모두 같지는 않을 수 있음
한 증언은 대부분 제주 출신이었다고 말하지만, 출신지나 집단 이탈만으로 모두 남로당원이라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비밀조직 가입, 지서 공격 참여, 무장대 합류, 중간 이탈 여부를 한 사람씩 확인해야 합니다. 집단의 결과와 개인의 책임을 구분합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미군 G-2 정기보고 제842·844호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78~180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653~654쪽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무기를 들고 부대를 이탈하고 경찰지서를 공격하거나 무장대에 합류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41명 모두의 동기와 뒤의 행동은 개인별로 구분해야 합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미군 보고는 사건 날짜를 5월 21일로 적었지만 경찰 사망일과 증언은 5월 20일 밤을 가리킵니다. 이탈자 한 명 한 명의 남로당 가입 여부와 행적은 모두 확인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