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만 따로 확인하기

양은하 고문 사망
확인 자료

시작 전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1948.03.14
서귀포시 대정읍 옛 모슬포지서 일대

확인할 가장 중요한 내용단독선거 반대 연설을 했던 영락리 청년 양은하가 포고령 위반 혐의로 붙잡혀 고문으로 숨진 사건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자료 01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49~152쪽 · 제주4·3평화재단 사건일지 1948년 3월 14일

양은하는 대정면 영락리에 살던 27세 청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연설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졌고, 붙잡히기 전에는 남한만의 선거가 나라를 나눌 수 있다며 반대 연설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경찰은 그를 ‘포고령 위반 피의자’로 붙잡았습니다. 1948년 3월 14일 새벽 모슬포지서에서 숨졌고, 부검은 심한 폭행으로 몸의 중요한 부위가 손상된 것을 사망 원인으로 확인했습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
자료 02당시 신문·미군 정보보고·함께 갇힌 사람의 말

경찰관 2명의 즉시 체포와 6명의 유죄판결

미 24군단 정보보고서는 모슬포에서 경찰관 2명이 수감자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동료 경찰에게 체포됐다고 적었습니다. 함께 갇혔던 사람은 몽둥이, 널빤지, 물을 이용한 고문이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50~152쪽 · 미 24군단 G-2 정기보고 제794호 1948년 3월 27일
확인 03누가 무엇을 했나

자료로 확인되는 책임

양은하의 연설이나 포고령 위반 혐의는 법에 따른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문으로 사람을 죽인 책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건 당시에도 담당 경찰들이 체포됐고 모슬포지서 경찰관 6명 모두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
아직 모름 04더 찾아봐야 할 내용

아직 사실이라고 정하지 않은 부분

정부 보고서에는 양은하가 남로당원이었다는 당원 명부나 유죄판결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포고령의 어느 조항을 어겼다고 본 것인지도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옛 모슬포지서의 정확한 자리도 더 확인해야 합니다.

자료 종류 · 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문장 뒤의 근거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은 아직 모르나요?

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01
누구였나 · 기록으로 확인

양은하는 말을 잘해 마을에서 연설로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정부 보고서는 그가 붙잡히기 직전 ‘남한만 선거하면 나라가 갈라질 수 있으니 반대해야 한다’는 뜻의 연설을 했다고 적습니다. 정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한 청년이었다는 점은 확인되지만, 그 사실만으로 무장활동을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료 ·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150~151쪽
02
왜 붙잡혔나 · 당시 상황

당시 신문은 경찰이 양은하를 ‘포고령을 어긴 혐의가 있는 사람’으로 붙잡았다고 보도했습니다.

포고령은 군정이나 행정기관이 널리 알린 명령입니다. 그러나 보고서에 옮겨진 기사만으로는 양은하가 어떤 명령의 어느 부분을 어겼다고 의심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혐의의 이름과 실제 행동을 같은 것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자료 · 제주신보 1948년 3월 16일 · 진상조사보고서 150~151쪽
03
남로당 관계 · 확인 범위 주의

현재 확인한 정부 보고서에는 양은하의 남로당 당원 명부나 무장대 활동 기록이 없습니다.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는 사실은 정치적 생각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남로당 가입, 남로당 협조, 무장공격 참여는 각각 별도의 증거가 필요한 다른 주장입니다. 새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치 활동은 확인, 당원 여부는 확인 안 됨’으로 구분합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50~152쪽에서 확인되는 범위
04
미군 기록 · 기록으로 확인

미 24군단 정보보고서는 경찰관 2명이 수감자를 때려 죽인 혐의로 체포됐다고 적었습니다.

보고서는 이 일을 ‘경찰, 불법행위로 체포’라는 내용으로 남겼습니다. 당시 경찰 조직 안에서도 두 담당자를 바로 붙잡았고, 뒤에는 모슬포지서 경찰관 6명이 군정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자료 · Hq. USAFIK G-2 Periodic Report No. 794, 1948.03.27 · 조선일보 1948.06.15
05
판단 기준 · 나누어 판단

정치 활동이나 남로당 관계가 확인되더라도 고문치사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경찰은 증거를 모으고 재판으로 죄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조사 중 폭행으로 숨지게 한 것은 그 절차를 없애 버린 일입니다. 그래서 이 페이지는 양은하의 정치 활동은 숨기지 않으면서, 고문한 경찰의 책임도 흐리지 않습니다.

자료 · 당시 미군 정보보고·군정재판과 정부 진상조사보고서를 함께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