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만 따로 확인하기

4·28 평화협상
확인 자료

협상·전환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1948.04.28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옛 구억국민학교 터

확인할 가장 중요한 내용군정의 승인 아래 김익렬과 김달삼이 전투 중지·단계적 무장해제·하산자 보호에 합의한 협상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자료 01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90~198쪽 · 김익렬 회고록 · 미군정 딘 군정장관의 1948.04.18 지시

1948년 4월 28일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이 구억리에서 약 네 시간 동안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72시간 안에 싸움을 멈추고, 무기를 차례로 내려놓고, 하산이 잘 이뤄지면 지도자들의 신변을 보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군이 하산자 수용소를 직접 관리하고 경찰 출입을 막는 방법도 논의했습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
자료 02협상 기록

김익렬·김달삼 회담 기록

군과 무장대 지도부가 직접 만나 전투 중지와 무장 해제 방법에 합의했다고 정부 보고서는 적고 있습니다.
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90~198쪽 · 구억국민학교 터 현장 기록
확인 03누가 무엇을 했나

자료로 확인되는 책임

합의를 실제로 지키고 현장 부대에 알릴 책임은 군정·군·경찰과 무장대 지도부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협상 뒤 각 주체가 한 방화·총격과 중앙 군정의 공격 명령은 따로 확인합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
아직 모름 04더 찾아봐야 할 내용

아직 사실이라고 정하지 않은 부분

현재 널리 알려진 합의문은 김익렬의 회고를 중심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람이 함께 서명한 원본 합의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자료 종류 · 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문장 뒤의 근거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은 아직 모르나요?

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01
협상 지시 · 기록으로 확인

딘 군정장관은 4월 18일 큰 공격에 앞서 무장대 지도자에게 항복 기회를 주라고 지시했습니다.

제주 주둔 미군 책임자 맨스필드는 김익렬에게 연락과 협상을 맡겼습니다. 협상은 김익렬 개인이 몰래 만든 일이 아니라 군정의 승인 아래 추진됐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90~195쪽
02
두 대표 · 당시 상황

김익렬은 군정장관의 권한을, 김달삼은 무장대 쪽의 권한을 대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김달삼은 군 지휘관이 약속을 실제로 지킬 힘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서로의 권한을 확인한 뒤 약 네 시간 동안 협상을 이어갔습니다.

자료 · 김익렬 회고 · 진상조사보고서 197쪽
03
세 가지 합의 · 기록으로 확인

72시간 안에 싸움을 멈추고, 무기를 차례로 내려놓고, 순조롭게 하산하면 지도자의 신변을 보장하기로 했습니다.

연락이 늦어 생긴 작은 충돌은 일정 시간까지 이해하되, 닷새 뒤의 전투는 약속 위반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97~198쪽
04
하산 절차 · 기록으로 확인

모슬포와 제주비행장에 하산자 수용소를 두고 군이 직접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무장대와 경찰의 불신이 컸기 때문에 경찰을 수용소에 들이지 않는 장치를 둔 것입니다. 이 절차는 합의가 주민 안전을 구체적으로 다뤘음을 보여줍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98쪽
05
자료와 결과 · 나누어 판단

합의 내용은 주로 김익렬 회고로 전하며, 5월 1일 오라리 사건과 5월 3일 공격 명령 뒤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협상 실패를 한 사건 하나에만 돌리면 중앙 군정의 강경 방침과 현장 경찰·청년단, 무장대의 뒤이은 행동을 놓치게 됩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98~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