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전에는 무엇을 했나요?
- 제2연대는 여수·순천 사건 진압 뒤 대전에 있었습니다.
- 1948년 12월 29일 제주에 있던 제9연대와 자리를 바꾸어 들어왔습니다.
4·3 때 어떤 일을 맡았나요?
세 단계 진압 계획
처음에는 산에서 내려오라고 알리고, 다음에는 무장대와 주민의 연결을 끊고, 마지막에는 산악지역을 수색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2연대 강경 작전 지휘
정부 보고서는 제2연대가 ‘마지막 한 명까지 없앤다’는 강한 목표를 세웠다고 적었습니다. 제3대대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큰 주민 희생이 난 시기의 연대장
1949년 1월 북촌과 2월 봉개·용강·회천 사건 등이 제2연대 지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지휘 책임과 현장에서 발포한 부대의 책임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전투사령부 참모장을 함께 맡음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만들어지자 유재흥 사령관 아래 참모장을 맡았습니다. 유재흥이 제주에 오기 전인 3월 말까지는 함병선이 작전을 주도했습니다.
제2연대가 제주에서 철수
제2연대가 인천으로 이동하면서 제주에서의 지휘 임무도 끝났습니다.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요?
연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현장 살해를 직접 명령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큰 희생이 반복된 부대를 지휘한 책임도 지울 수 없습니다. 북촌에서 총살을 누가 중단시켰는지도 새 조사와 옛 설명이 달라, 최신 추가 보고서의 확인 내용을 따로 표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