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자료에서 확인국방경비대·국군

4·3 활동 시기: 1949년 3~5월

유재흥劉載興

이 사람이 맡은 일제주도지구전투사령관

1949년 3월 군·경찰·우익청년단을 한데 지휘하는 전투사령부의 사령관이 됐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 주겠다고 알리는 한편 큰 토벌작전을 벌였습니다. 내려온 주민들이 뒤에 군법회의에 넘겨진 문제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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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전에는 무엇을 했나요?

  • 1949년 3월 2일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만들어질 때 사령관에 임명됐습니다.
  • 그에게는 군인뿐 아니라 경찰과 응원경찰, 우익청년단까지 함께 지휘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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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때 어떤 일을 맡았나요?

여러 무장조직을 한 지휘 아래 둠

1949년 4월 1일 미군 보고에는 유재흥이 이끈 쪽에 군인 2,622명, 경찰 1,700명, 민보단 약 5만 명이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라는 작전

과거 잘못을 묻지 않고 생명을 보장하겠다며 산에 있던 사람에게 내려오라고 알렸습니다. 싸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지만, 실제 처리는 약속과 달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산자 군법회의 문제

추가 보고서는 내려온 1,659명이 군법회의에 넘겨졌고, 그 가운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내려오면 살려 준다’는 약속과 실제 처리를 따로 비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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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1. 전투사령부가 없어짐

    5·10 재선거 뒤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임무를 끝냈습니다. 제주 진압은 다시 함병선 제2연대장이 맡았습니다.

04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요?

아직 모르거나 조심해서 읽을 부분

귀순·하산을 권한 정책과 큰 토벌작전이 함께 있었습니다. ‘전부 살려 줬다’거나 ‘모두 속이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한 문장으로 정하면 실제 기록이 사라집니다. 약속, 하산자 수, 군법회의 결과를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자료에서 찾기

유재흥은 어느 자료에 나오나요?

자료 이름과 실제로 나오는 쪽수를 적었습니다. 여러 쪽에 나뉘어 있으면 모두 볼 수 있게 범위를 적었습니다.

자료 이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어디에 나오나요?
320~333쪽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전투사령부 창설, 귀순 공작과 5·10 재선거
자료 이름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어디에 나오나요?
329쪽 · 641~642쪽
무엇을 알 수 있나요?
하산자 군법회의, 통합 지휘 병력과 작전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