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전에는 무엇을 했나요?
- 4·3이 시작될 때 제9연대장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아직 세워지기 전이어서 부대 이름은 ‘조선국방경비대’였습니다.
- 추가 조사보고서는 제9연대가 4월 17일 진압 임무에 들어갔고, 4월 24일 첫 작전을 벌였다고 적었습니다.
4·3 때 어떤 일을 맡았나요?
무장대와 주민을 나누어 보려 함
김익렬은 경찰의 강한 진압과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먼저 주민에게 산에서 내려오라고 알리고, 무장대 지도부와 대화해 싸움을 줄이려 했습니다.
4월 28일 김달삼과 만남
김달삼을 만나 싸움을 멈추고 무기를 차례로 내려놓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만남은 군과 무장대 지도부가 직접 만난 가장 중요한 기록입니다.
5월 6일 자리에서 물러남
5월 3일 딘 군정장관이 무장대 총공격을 명령한 뒤, 5월 6일 연대장이 박진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뒤 군의 방법도 더 강한 수색과 체포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제주 지휘에서 물러남
박진경이 새 제9연대장으로 오면서 제주에서 군을 이끄는 역할이 끝났습니다.
군 생활을 계속하고 중장으로 예편
김익렬은 군 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훗날 남긴 글은 4·28 대화와 당시 지휘부의 갈등을 살피는 자료가 됐습니다. 다만 회고록은 사건 뒤 오랜 시간이 지나 쓴 글이므로 다른 기록과 함께 봐야 합니다.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요?
김익렬이 사람을 덜 죽이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는 기록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그렇다고 그의 지휘 기간에 군 작전으로 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4월 24일 첫 작전과 군인 피해도 함께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