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만 따로 확인하기

도두리 죽창 희생
확인 자료

군경의 진압·희생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1949.02.20
제주시 도두리 일대

확인할 가장 중요한 내용군·경의 감독 아래 민보단원이 주민들을 죽창으로 찌르게 한 현장을 미군고문단이 목격한 사건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자료 01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314~315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5~269쪽(확인 65명)

1949년 2월 20일 제주경찰서에 갇혀 있던 주민들이 도두리 궤동산으로 실려 왔습니다. 미군 보고는 군과 경찰의 감독 아래 민보단원이 76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였고, 미군고문단이 그중 38명의 처형을 목격했다고 적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 65명을 정리했습니다. 미군 보고가 이들을 ‘반도’라고 부른 것만으로 개인별 무장 활동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
자료 02당시 미군 보고

미군사고문단 기록

유족과 주민은 군인이 도두리 청년들에게 죽창을 들게 하고, 붙잡혀 온 사람들이 마을을 공격한 자들이라고 말하며 찌르라고 명령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출처 ·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1949.03.03)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5~269쪽
확인 03누가 무엇을 했나

자료로 확인되는 책임

실제로 죽창을 사용한 민보단원, 이를 명령·감독한 군과 경찰, 현장을 보고도 막지 않은 미군고문단의 역할을 각각 살펴야 합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
아직 모름 04더 찾아봐야 할 내용

아직 사실이라고 정하지 않은 부분

미군 보고의 76명과 이름이 확인된 65명 사이에는 11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피해자별 혐의, 정확한 지휘 명령과 실행자 명단도 모두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자료 종류 · 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문장 뒤의 근거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은 아직 모르나요?

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01
끌려온 사람들 · 기록으로 확인

화북 등 여러 마을 주민이 버스 2~3대에 실려 도두리로 왔습니다.

유족 증언은 이들이 옷을 벗은 상태로 총살터에 세워졌다고 전합니다. 재판을 거쳤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7쪽
02
명령과 실행 · 기록으로 확인

미군 보고는 군과 경찰이 작전을 감독하고 민보단원이 죽창으로 사람을 찔렀다고 적었습니다.

주민 증언은 군인이 도두리 청년에게 구덩이를 파게 하고 총을 겨누며 죽창 사용을 강요했다고 전합니다. 실행과 강요·지휘 책임을 함께 봐야 합니다.

자료 ·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6~267쪽
03
미군 목격 · 나누어 판단

미군고문단 네 명이 도착했을 때 절반은 이미 숨져 있었고, 나머지 38명의 처형을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작전통제와 고문 임무를 맡은 미군이 현장을 중단시키지 않은 이유와 책임도 역사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자료 ·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 · 진상조사보고서 315쪽
04
피해자 표현 · 나누어 판단

미군 문서가 집단 전체를 ‘반도’라고 불렀지만 여성 5명과 중학생 나이의 아이들도 포함됐습니다.

체포 당시 혐의나 무장 활동이 사람별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당시 군이 붙인 이름과 실제 개인 행동을 같다고 보면 안 됩니다.

자료 ·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의 표현과 피해자 구성 대조
05
숫자 확인 · 확인 범위 주의

2020년 추가 조사는 마을과 이름을 대조해 65명을 확인했습니다.

65명은 ‘실제 피해가 65명뿐’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 이름이 확인된 범위입니다. 나머지 11명의 신원과 시신 위치는 더 조사해야 합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7~269쪽, 표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