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9년 2월 20일 제주경찰서에 갇혀 있던 주민들이 도두리 궤동산으로 실려 왔습니다. 미군 보고는 군과 경찰의 감독 아래 민보단원이 76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였고, 미군고문단이 그중 38명의 처형을 목격했다고 적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 65명을 정리했습니다. 미군 보고가 이들을 ‘반도’라고 부른 것만으로 개인별 무장 활동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당시 미군 보고 · 기록과 말을 쉽게 줄인 내용
유족과 주민은 군인이 도두리 청년들에게 죽창을 들게 하고, 붙잡혀 온 사람들이 마을을 공격한 자들이라고 말하며 찌르라고 명령했다고 증언했습니다.미군사고문단 기록출처 ·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1949.03.03)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5~269쪽
한 문장보다 깊이 보기
도두리의 76명과 65명은 무엇이 다른가요?
누가 끌려왔는지, 누가 명령하고 실행했는지, 미군이 무엇을 봤는지, 명단이 어디까지 확인됐는지 나눕니다.
끌려온 사람들기록으로 확인
제주경찰서 유치장에서 궤동산으로
화북 등 여러 마을 주민이 버스 2~3대에 실려 도두리로 왔습니다.유족 증언은 이들이 옷을 벗은 상태로 총살터에 세워졌다고 전합니다. 재판을 거쳤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명령과 실행기록으로 확인
군·경 감독, 민보단의 죽창
미군 보고는 군과 경찰이 작전을 감독하고 민보단원이 죽창으로 사람을 찔렀다고 적었습니다.주민 증언은 군인이 도두리 청년에게 구덩이를 파게 하고 총을 겨누며 죽창 사용을 강요했다고 전합니다. 실행과 강요·지휘 책임을 함께 봐야 합니다.
미군 목격나누어 판단
38명은 이미 사망, 38명 처형 목격
미군고문단 네 명이 도착했을 때 절반은 이미 숨져 있었고, 나머지 38명의 처형을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작전통제와 고문 임무를 맡은 미군이 현장을 중단시키지 않은 이유와 책임도 역사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피해자 표현나누어 판단
보고서의 ‘반도’는 개인별 증거가 아님
미군 문서가 집단 전체를 ‘반도’라고 불렀지만 여성 5명과 중학생 나이의 아이들도 포함됐습니다.체포 당시 혐의나 무장 활동이 사람별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당시 군이 붙인 이름과 실제 개인 행동을 같다고 보면 안 됩니다.
숫자 확인확인 범위 주의
미군 보고 76명, 확인 명단 65명
2020년 추가 조사는 마을과 이름을 대조해 65명을 확인했습니다.65명은 ‘실제 피해가 65명뿐’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 이름이 확인된 범위입니다. 나머지 11명의 신원과 시신 위치는 더 조사해야 합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미군 G-2 정기보고 제1077호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314~315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65~269쪽(확인 65명)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실제로 죽창을 사용한 민보단원, 이를 명령·감독한 군과 경찰, 현장을 보고도 막지 않은 미군고문단의 역할을 각각 살펴야 합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미군 보고의 76명과 이름이 확인된 65명 사이에는 11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피해자별 혐의, 정확한 지휘 명령과 실행자 명단도 모두 확인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