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만 따로 확인하기

도평리 위장 작전과 희생
확인 자료

군경의 진압·희생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1949.01.03~01.04
제주시 도평동 여러 곳

확인할 가장 중요한 내용경찰과 특공대가 무장대처럼 꾸며 주민의 반응을 시험한 뒤, 속지 않은 주민까지 포함해 확인된 78명을 살해한 사건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자료 01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298~300쪽(약 70명)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5쪽(확인 78명)

1949년 1월 3일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는 무장대처럼 옷을 입고 인공기를 든 채 도평리에 들어갔습니다. 주민 양경하와 김성규가 이들이 토벌대임을 알아보고 무장대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현장에서 살해됐습니다. 토벌대는 주민 두 명을 고문해 사람을 지목하게 하고, 직접 청년들을 골라 외도리 옴팡밭 등에서 총살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희생자 78명을 확인했습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
자료 02공식 사건일지

도평리 위장 작전 기록

공식 사건일지는 약 70명으로 적었고, 추가 조사에서는 이름·나이·희생 장소를 대조해 78명을 확인했습니다. 명단에는 어린이와 노인도 있습니다.
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298~300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5쪽
확인 03누가 무엇을 했나

자료로 확인되는 책임

사람을 속여 반응을 시험하고, 고문으로 나온 지목을 근거로 재판 없이 죽인 책임은 외도지서 경찰·특공대와 지휘 쪽에 있습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
아직 모름 04더 찾아봐야 할 내용

아직 사실이라고 정하지 않은 부분

78명 가운데 일부는 학교·하천 등 다른 지점에서 희생됐습니다. 누가 최종 명령을 내렸는지와 각 실행자의 이름은 공개 보고서만으로 모두 확인되지 않습니다.

자료 종류 · 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문장 뒤의 근거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은 아직 모르나요?

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01
작전 준비 · 기록으로 확인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는 무장대로 보이게 꾸민 뒤 마을을 포위하고 아침에 들어갔습니다.

집마다 들어가 왜 산 쪽을 돕지 않느냐고 물어 주민의 대답을 시험했습니다. 대답 하나를 혐의의 증거로 삼는 함정이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02
정체를 알아챔 · 기록으로 확인

양경하와 김성규는 아는 얼굴을 보고 토벌대임을 알아챘습니다.

두 사람은 무장대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지만 현장에서 사살됐습니다. ‘무장대에 속아 협조한 사람만 죽였다’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03
고문 지목 · 기록으로 확인

강순옥과 이정숙은 주민 앞에서 고문받으며 협조자를 지목하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보고서는 두 사람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사람을 마구 지목했다고 적습니다. 토벌대는 그 뒤 스스로도 청년들을 골라 묶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04
희생 장소 · 기록으로 확인

붙잡힌 주민들은 정식 조사나 재판 없이 외도지서 인근 밭 등에서 총살됐습니다.

가족은 약 두 달 뒤에야 시신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명단에는 3살·4살·5살 어린이와 노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2~285쪽, 표 3-22
05
숫자 다시 보기 · 나누어 판단

초기 사건일지는 약 70명, 추가 조사는 이름을 대조해 78명으로 정리했습니다.

새 숫자는 희생이 늘었다는 단순 뜻보다, 학교·하천·옴팡밭 등 관련 장소의 사람을 다시 확인한 결과입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299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