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의 진압·희생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도평리 위장 작전과 희생

제주시 도평동 여러 곳

경찰과 특공대가 무장대처럼 꾸며 주민의 반응을 시험한 뒤, 속지 않은 주민까지 포함해 확인된 78명을 살해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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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9년 1월 3일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는 무장대처럼 옷을 입고 인공기를 든 채 도평리에 들어갔습니다. 주민 양경하와 김성규가 이들이 토벌대임을 알아보고 무장대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현장에서 살해됐습니다. 토벌대는 주민 두 명을 고문해 사람을 지목하게 하고, 직접 청년들을 골라 외도리 옴팡밭 등에서 총살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희생자 78명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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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공식 사건일지 · 기록과 말을 쉽게 줄인 내용
공식 사건일지는 약 70명으로 적었고, 추가 조사에서는 이름·나이·희생 장소를 대조해 78명을 확인했습니다. 명단에는 어린이와 노인도 있습니다.
도평리 위장 작전 기록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298~300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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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보다 깊이 보기

도평리 ‘함정 작전’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무장대로 꾸민 이유, 주민이 정체를 알아챈 순간, 고문 지목, 총살 장소, 숫자 확인을 차례로 봅니다.

작전 준비기록으로 확인

무장대 옷과 인공기로 위장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는 무장대로 보이게 꾸민 뒤 마을을 포위하고 아침에 들어갔습니다.

집마다 들어가 왜 산 쪽을 돕지 않느냐고 물어 주민의 대답을 시험했습니다. 대답 하나를 혐의의 증거로 삼는 함정이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정체를 알아챔기록으로 확인

‘무장대라면 맞서겠다’

양경하와 김성규는 아는 얼굴을 보고 토벌대임을 알아챘습니다.

두 사람은 무장대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지만 현장에서 사살됐습니다. ‘무장대에 속아 협조한 사람만 죽였다’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고문 지목기록으로 확인

견디지 못한 두 사람에게 이름을 말하게 함

강순옥과 이정숙은 주민 앞에서 고문받으며 협조자를 지목하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보고서는 두 사람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사람을 마구 지목했다고 적습니다. 토벌대는 그 뒤 스스로도 청년들을 골라 묶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2쪽
희생 장소기록으로 확인

외도리 옴팡밭 등 여러 곳

붙잡힌 주민들은 정식 조사나 재판 없이 외도지서 인근 밭 등에서 총살됐습니다.

가족은 약 두 달 뒤에야 시신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명단에는 3살·4살·5살 어린이와 노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2~285쪽, 표 3-22
숫자 다시 보기나누어 판단

약 70명에서 확인 78명으로

초기 사건일지는 약 70명, 추가 조사는 이름을 대조해 78명으로 정리했습니다.

새 숫자는 희생이 늘었다는 단순 뜻보다, 학교·하천·옴팡밭 등 관련 장소의 사람을 다시 확인한 결과입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299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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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어디에 적혀 있나요?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298~300쪽(약 70명)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1~285쪽(확인 78명)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사람을 속여 반응을 시험하고, 고문으로 나온 지목을 근거로 재판 없이 죽인 책임은 외도지서 경찰·특공대와 지휘 쪽에 있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78명 가운데 일부는 학교·하천 등 다른 지점에서 희생됐습니다. 누가 최종 명령을 내렸는지와 각 실행자의 이름은 공개 보고서만으로 모두 확인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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