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만 따로 확인하기

3·10 제주 총파업
확인 자료

시작 전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1947.03.10~03.13
제주도청에서 시작해 제주 전역으로 퍼짐

확인할 가장 중요한 내용3·1절 발포에 항의하는 넓은 참여와 남로당 제주도당의 조직 지도가 함께 있었던 전도 총파업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자료 01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14~123쪽 · 제주4·3평화재단 주요사건 ‘3·1사건과 민·관 총파업’

1947년 3월 10일 제주도청에서 시작한 파업은 학교·우체국·운수회사·은행·면사무소로 퍼졌습니다. 경찰 기록은 166개 기관과 단체, 4만 1,211명이 참여했다고 적었습니다. 공무원·교사·학생과 일부 경찰까지 참여한 넓은 항의였지만, 남로당 제주도당이 3월 7일 지령을 내려 조직적으로 이끈 사실도 확인됩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
자료 02공식 사건일지

제주4·3평화재단 사건일지

제주도청에서 시작한 파업이 사흘 사이 제주 전역의 거의 모든 직장으로 퍼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14~123쪽 · 공식 사건일지 1947년 3월 10일
확인 03누가 무엇을 했나

자료로 확인되는 책임

항의 파업에 참여한 일과 폭력을 쓴 일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남로당의 조직 활동, 경찰의 대규모 검거와 고문도 각각 따로 확인합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
아직 모름 04더 찾아봐야 할 내용

아직 사실이라고 정하지 않은 부분

166개 기관·단체의 모든 건물 위치를 한 지도에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지도 점은 파업이 시작된 곳을 찾기 위한 대표점입니다.

자료 종류 · 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문장 뒤의 근거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은 아직 모르나요?

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01
파업의 시작 · 기록으로 확인

도청 직원들은 발포 책임자 처벌, 부상자 지원, 무장과 고문 중단 등을 요구했습니다.

3월 10일 도청 약 140명이 업무를 멈췄고, 같은 날 학교·운수업체·항무서 등도 참여했습니다. 이튿날부터 다른 관공서와 회사로 넓어졌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13~115쪽
02
참여 규모 · 기록으로 확인

경찰사 기록은 경찰·사법기관을 뺀 166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했다고 적었습니다.

학교 학생까지 포함된 숫자입니다. 상점과 일부 경찰의 동참은 이 집계에서 빠져 있어, 실제 참여 범위는 더 넓었을 수 있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15~116쪽 · 『제주경찰사』
03
남로당의 역할 · 당시 상황

남로당 제주도당은 각 읍·면 조직에 지령을 내리고 3월 10일 정오부터 파업하라고 했습니다.

도당은 안팎의 위원회를 만들고 요구안을 배포했습니다. 총파업이 넓은 민심의 항의였다는 사실과, 남로당이 그 흐름을 조직에 이용했다는 사실은 함께 성립합니다.

자료 ·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1947.03.07 지령 · 진상조사보고서 111~113쪽
04
참여자의 차이 · 나누어 판단

우익 인사와 공무원, 교사, 학생, 일부 제주 출신 경찰도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발포 책임을 묻는 항의에 동참한 것과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참여 이유와 조직 관계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13~116쪽
05
뒤의 대응 · 나누어 판단

군정과 경찰은 파업 지도자를 잡고 응원경찰을 늘렸으며, 남로당 조직은 더 비밀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이 과정은 긴장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파업 탄압이 1년 뒤 무장공격을 피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무장공격은 뒤에 지도부가 토론하고 선택한 결정입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17~123·152~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