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57~159쪽
1948년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남로당 제주도당과 각 면의 책임자 19명이 신촌리의 한 집에 모였습니다. 이삼룡의 증언에 따르면 김달삼이 무장봉기를 먼저 제안했고, 12명이 찬성하고 7명이 반대했습니다. 중앙당의 사전 명령은 없었고 제주도당이 선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제주의 봄은 오래도록,
그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주 4·3, 진실을 찾는 여정
남겨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록을 따라
아픈 어제를 밝히고, 더 나은 내일로 걸어갑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곳에서,
우리의 봄은 다시 시작됩니다.
1948.02 말~03 초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 정확히 어느 집인지는 더 확인해야 함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1948년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남로당 제주도당과 각 면의 책임자 19명이 신촌리의 한 집에 모였습니다. 이삼룡의 증언에 따르면 김달삼이 무장봉기를 먼저 제안했고, 12명이 찬성하고 7명이 반대했습니다. 중앙당의 사전 명령은 없었고 제주도당이 선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서울의 남로당 중앙조직이 내린 명령은 없었고 제주 조직이 스스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은 당시 상황을 잘못 보았고 김달삼의 ‘무력으로 싸우자’는 주장에 끌려갔다고 했습니다.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58쪽
회의에 직접 참석한 사람의 말은 남로당 제주도당 지도부가 토론하고 투표한 뒤 무장공격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격을 시작한 조직의 책임을 알려 주는 자료입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회의가 열린 정확한 날짜와 어느 집이었는지는 다른 사람의 말과 자료를 더 비교해야 합니다.
자료 종류 · B · 사건에 참여했거나 직접 본 사람의 말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정확한 집과 날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제주 전체 조직과 각 지역 조직의 책임자들이 모인 지도부 회의였다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토론 뒤 공격 쪽으로 결정됐습니다. 김달삼은 군사 책임을 맡겠다고 했고, 사건 약 열흘 전에 공격 날짜를 알렸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단독선거가 이뤄지면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과 우익청년단을 공격하면 민심을 다시 모을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이삼룡·이운방·김생민은 뒤의 증언에서 지도부가 국제정세와 군의 대응을 너무 낙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오판은 긴 무력충돌과 주민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3월 15일 무렵 전남도당에서 온 조직 담당자가 회의에 참여한 기록은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중앙조직이 4월 3일 공격을 미리 명령한 문서는 현재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연락이 있었다는 사실과 공격 명령이 있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보고서는 위 카드에 이름과 쪽수를 적었습니다. 같은 소개 화면으로 가는 단추는 넣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