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전B · 사건에 참여했거나 직접 본 사람의 말

신촌 무장공격 결정회의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 정확히 어느 집인지는 더 확인해야 함

남로당 제주도당 지도자 19명이 토론하고 12대 7로 무장공격을 선택한 회의
01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8년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남로당 제주도당과 각 면의 책임자 19명이 신촌리의 한 집에 모였습니다. 이삼룡의 증언에 따르면 김달삼이 무장봉기를 먼저 제안했고, 12명이 찬성하고 7명이 반대했습니다. 중앙당의 사전 명령은 없었고 제주도당이 선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02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남로당 제주도당 정치 책임자의 말 · 기록과 말을 쉽게 줄인 내용
서울의 남로당 중앙조직이 내린 명령은 없었고 제주 조직이 스스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은 당시 상황을 잘못 보았고 김달삼의 ‘무력으로 싸우자’는 주장에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이삼룡 · 2002년 7월 11일에 들은 말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58쪽
03
한 문장보다 깊이 보기

누가 무장공격을 제안했고, 왜 찬반이 갈렸나요?

회의 참가자의 증언, 남로당 쪽 작전 기록, 뒤에 남긴 회고를 서로 맞춰 결정 과정과 판단의 잘못을 살펴봅니다.

회의 참석자기록으로 확인

도당·면당 책임자 19명

이삼룡은 조몽구·이종우·강대석·김달삼 등 19명이 신촌리의 한 집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집과 날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제주 전체 조직과 각 지역 조직의 책임자들이 모인 지도부 회의였다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료 · 이삼룡 증언 2002.07.11 · 진상조사보고서 157~158쪽
결정기록으로 확인

김달삼 제안, 12대 7

12명은 공격에 찬성했고 7명은 ‘무기도 없으니 더 지켜보자’며 반대했습니다.

토론 뒤 공격 쪽으로 결정됐습니다. 김달삼은 군사 책임을 맡겠다고 했고, 사건 약 열흘 전에 공격 날짜를 알렸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자료 · 이삼룡 증언 · 진상조사보고서 158쪽
내세운 목표당시 상황

조직 보호와 5·10 선거 반대

지도부는 경찰 검거로부터 당 조직을 지키고 남한만의 선거를 막는다는 두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단독선거가 이뤄지면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과 우익청년단을 공격하면 민심을 다시 모을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56~160쪽 ·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잘못된 예상나누어 판단

짧게 끝날 것이라는 오판

지도부는 군과 미군이 적극 나서지 않고, 본토에서도 봉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잘못 내다봤습니다.

이삼룡·이운방·김생민은 뒤의 증언에서 지도부가 국제정세와 군의 대응을 너무 낙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오판은 긴 무력충돌과 주민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58~159쪽의 이삼룡·이운방·김생민 증언
중앙과의 관계확인 범위 주의

사전 명령은 확인되지 않음

이삼룡은 ‘중앙당의 지령은 없었고 제주에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3월 15일 무렵 전남도당에서 온 조직 담당자가 회의에 참여한 기록은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중앙조직이 4월 3일 공격을 미리 명령한 문서는 현재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연락이 있었다는 사실과 공격 명령이 있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158~165쪽
04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어디에 적혀 있나요?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57~159쪽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회의에 직접 참석한 사람의 말은 남로당 제주도당 지도부가 토론하고 투표한 뒤 무장공격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격을 시작한 조직의 책임을 알려 주는 자료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회의가 열린 정확한 날짜와 어느 집이었는지는 다른 사람의 말과 자료를 더 비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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