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8년 12월 3일 밤 9시 무렵, 무장대가 세화리를 공격해 길가 집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살해했습니다. 새벽 2시 무렵 물러날 때까지 약 150채가 불탔습니다. 당시에는 희생자가 약 50명으로 알려졌고, 2020년 추가 조사에서는 숨지거나 뒤에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 등 48명의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날 경찰은 붙잡아 두었던 이웃 마을 주민 16명을 보복으로 총살했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지형종은 무장대가 주민이 어느 편인지 묻지도 않고 공격했고, 자신의 가족과 친척 8명이 희생됐다고 말했습니다. 추가 조사에서는 어린아이와 피난 온 주민, 공격 뒤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도 확인했습니다.지형종 · 가족과 친척 8명 희생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438~439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5~289쪽
세화리의 ‘약 50명’은 어떻게 48명으로 확인됐나요?
마을의 위치와 역할, 다섯 시간 동안의 공격, 피해자 명단, 다음 날의 경찰 보복을 차례로 봅니다.
경찰지서와 민보단이 있던 마을
세화리는 경찰이 머물고 우익세력이 강해 무장대가 ‘토벌대 편’으로 본 곳이었습니다.이웃 중산간마을에서 내려온 피난 주민도 세화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무장대는 자신들을 돕지 않고 군·경에 협조한다고 판단해 마을 전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무장대는 길가 집부터 불을 지르고 마을을 돌며 주민을 공격했습니다.40가구의 집 약 150채가 불탔습니다. 세화지서에는 경찰 약 35명이 있었지만 공격이 끝날 때까지 지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림수 약 50명, 확인 명단 48명
2020년 추가 보고서는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마을을 맞춰 48명을 정리했습니다.세화리 주민뿐 아니라 송당리 등에서 내려온 피난 주민도 포함됩니다. 공격 때 다친 뒤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도 있어 ‘그날 현장 사망자’와 48명이 꼭 같은 뜻은 아닙니다.
아이와 가족도 가리지 않음
한 가족에서는 보초 근무로 집을 비운 두 사람을 빼고 가족 8명이 희생됐습니다.확인 명단에는 어린아이, 임신 중이던 여성, 창에 찔리거나 화상을 입고 뒤에 숨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무장대 공격이 전투원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 날 경찰의 16명 총살
경찰은 공격이 끝난 뒤 지서에 가둬 둔 이웃 마을 사람 16명을 총살했습니다.며칠 뒤에는 세화리 출신 무장대의 가족도 총살했습니다. 무장대의 주민 살해와 경찰의 보복 살해는 이어졌지만, 각각 다른 사람이 한 별개의 범죄입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438~439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5~289쪽(확인 명단 48명)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주민을 가리지 않고 죽이고 집을 불태운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그 뒤 보복으로 사람을 총살한 책임은 경찰에 있습니다. 두 잘못을 따로 기록합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약 50명’은 당시의 어림수이고, 48명은 뒤의 조사에서 이름을 맞춘 수입니다. 공격 직후 숨진 사람과 후유증으로 뒤에 숨진 사람을 명단에서 구분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