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8년 11월 28일 무장대는 남원지서와 위미지서가 있는 마을들을 함께 공격했습니다. 미군 보고는 무장한 약 200명과 비무장 500명, 집 250채 소실, 두 마을 민간인 50명 사망으로 적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남원 45명, 위미 25명, 태흥 14명 등 무장대 공격 희생 89명의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공격 뒤 이틀 동안 군경이 관련자를 찾는 과정에서 31명이 연행되거나 총살됐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위미리가 무장대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도 불타는 집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고 했습니다.현봉협 · 당시 위미리 교사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439~440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9~296쪽
위미리 피해 숫자는 왜 25명·50명·89명으로 다르게 보이나요?
사건 직후 보고와 뒤의 이름 확인, 여러 마을 합계, 보복 피해를 각각 다른 칸에 둡니다.
남원지서와 위미지서를 함께 공격
무장대는 남원면의 두 경찰지서가 있는 마을을 같은 아침에 공격했습니다.미군 보고는 무장한 약 200명과 비무장 약 500명이 참여했다고 적었습니다. 여러 시간 동안 집을 불태우고 식량을 가져갔습니다.
집 250채, 민간인 50명 사망
사건 직후 경찰 보고는 남원리와 위미리 합계로 민간인 50명 사망, 70명 부상이라고 적었습니다.경찰 3명도 다쳤다고 보고됐습니다. 이는 현장에서 빠르게 모은 두 마을 합계여서 뒤의 명단과 범위가 다릅니다.
무장대 공격 희생 89명, 위미 주민 25명
추가 조사는 남원 45명, 위미 25명, 태흥 14명과 다른 마을 주민 5명을 확인했습니다.합계 89명에는 남원리로 내려와 살던 수망리 주민 등도 들어 있습니다. 89명을 모두 위미리 주민이라고 쓰면 틀립니다.
‘무장대를 돕지 않는다’는 이유
교사 현봉협은 지서의 강한 통제로 마을이 무장대에 협조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공격받았다고 말했습니다.그의 어머니도 불타는 집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공격은 경찰만이 아니라 여성과 노인 등 주민에게 향했습니다.
11월 28~29일 군경 피해 31명
공격 뒤 군경은 관련자를 찾는 과정에서 남원·수망·의귀·위미·태흥 주민 31명을 연행하거나 총살했습니다.무장대 공격 89명과 군경 보복 31명을 합치면 연결된 사건의 확인 피해는 120명입니다. 그러나 두 숫자는 가해자가 다르므로 반드시 나누어 보여야 합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미군정 G-2 정기보고 제1000호(1948.11.30)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89~296쪽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무장대를 돕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한꺼번에 벌하고 죽인 책임은 무장대 지휘자와 실제 공격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두 마을 50명’은 당시 경찰 보고의 빠른 집계이고, 89명은 남원·위미·태흥과 피난 주민까지 뒤에 이름을 맞춘 수입니다. 위미리 주민 25명과 위미리 전체 기간의 무장대 피해 숫자를 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