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만 따로 확인하기

성읍리 주민 공격
확인 자료

무장대의 공격C · 마을 주민의 말

1949.01.13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확인할 가장 중요한 내용군경이 마을을 비운 사이 무장대가 성읍리를 공격하고, 다음 날 군경 보복이 이어진 사건

이곳에서 일어난 일과 바로 이어지는 자료만 모았습니다. 다른 마을의 자료는 섞지 않았습니다.

자료 01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은 기록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441~442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9쪽(관련 명단 49명) · 공식 사건일지 1949.01.13

1949년 1월 13일, 군인·경찰·민보단이 수색작전에 나간 사이 무장대가 성읍리를 공격했습니다. 보초를 서던 주민과 식량을 내놓지 않은 주민을 죽이고 학교와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마을 비석은 이날 희생 38명을 적었고, 2020년 추가 보고서의 관련 명단은 후유 사망·미신고자·다음 날 보복 피해까지 포함해 49명입니다. 보고서 표의 ‘1948.01.13’ 표기는 본문과 사건일지에 비춰 1949년의 오자로 봅니다.

자료 종류 · 정부 보고서의 설명과 보고서가 가져온 다른 기록
자료 02마을별 조사 기록

성읍리 희생자 명단·마을 비석

정부 보고서는 마을 입구의 비석에 이날 희생된 3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적었습니다.
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441~442쪽
확인 03누가 무엇을 했나

자료로 확인되는 책임

마을을 지키는 일과 상관없는 주민까지 죽이고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강요한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읽을 때 볼 점 · 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책임
아직 모름 04더 찾아봐야 할 내용

아직 사실이라고 정하지 않은 부분

비석의 38명은 공격 당일을 중심으로 한 수이고, 추가 보고서 49명은 뒤에 숨진 사람·미신고자·보복 피해를 함께 적은 관련 명단입니다. 같은 기준의 숫자가 아닙니다.

자료 종류 · C · 마을 주민의 말
문장 뒤의 근거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은 아직 모르나요?

짧은 결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 판단을 만든 기록과 확인 범위를 한 칸씩 나눴습니다.

01
마을 상황 · 당시 상황

성읍리는 경찰지서가 있어 비워지지 않았고, 주민들은 민보단과 수색작전에 동원됐습니다.

다른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내려간 뒤에도 성읍리는 토벌대의 앞쪽 기지로 남았습니다. 이 때문에 무장대는 성읍리를 ‘토벌대 편’으로 보았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441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쪽
02
1월 13일 · 기록으로 확인

군 1개 소대와 경찰 약 30명, 민보단 특공대가 산으로 나간 사이 무장대가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무장대는 마을 밖 보초를 죽이고 약 두 시간 동안 집을 돌며 식량을 빼앗았습니다. 먹을 것을 바로 내놓지 않은 주민도 살해됐고 성읍국민학교가 불탔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쪽
03
가족 피해 · 기록으로 확인

강석권의 가족은 아들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아내·딸·며느리 등 여러 가족이 함께 희생됐습니다.

확인 명단에는 보초를 서던 주민뿐 아니라 7살 어린이와 노인도 있습니다. 가족 관계만으로 공격한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9쪽
04
다음 날 · 나누어 판단

1월 14일 군경은 무장대와 연락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과 ‘도피자 가족’을 총살했습니다.

민보단원에게 창으로 찌르게 강요한 뒤 총살한 사례도 보고서에 적혀 있습니다. 무장대 공격의 피해가 군경의 재판 없는 보복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7쪽
05
숫자와 날짜 · 확인 범위 주의

마을 비석은 38명, 추가 보고서 표는 관련 희생 49명을 적습니다.

49명에는 후유증 사망과 미신고자, 보복 관련 피해가 섞여 있어 38명과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추가 보고서 표 머리의 1948년은 본문과 공식 일지의 1949년과 맞지 않아 오자로 처리합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442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