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대의 공격C · 마을 주민의 말

성읍리 주민 공격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군경이 마을을 비운 사이 무장대가 성읍리를 공격하고, 다음 날 군경 보복이 이어진 사건
01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9년 1월 13일, 군인·경찰·민보단이 수색작전에 나간 사이 무장대가 성읍리를 공격했습니다. 보초를 서던 주민과 식량을 내놓지 않은 주민을 죽이고 학교와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마을 비석은 이날 희생 38명을 적었고, 2020년 추가 보고서의 관련 명단은 후유 사망·미신고자·다음 날 보복 피해까지 포함해 49명입니다. 보고서 표의 ‘1948.01.13’ 표기는 본문과 사건일지에 비춰 1949년의 오자로 봅니다.

02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마을별 조사 기록 · 기록과 말을 쉽게 줄인 내용
정부 보고서는 마을 입구의 비석에 이날 희생된 3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적었습니다.
성읍리 희생자 명단·마을 비석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441~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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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보다 깊이 보기

성읍리의 38명과 49명은 무엇이 다른가요?

마을이 군경 거점이 된 배경, 공격 시점, 주민 피해, 다음 날 보복, 표의 날짜 오류까지 나눠 봅니다.

마을 상황당시 상황

중산간의 군경 거점

성읍리는 경찰지서가 있어 비워지지 않았고, 주민들은 민보단과 수색작전에 동원됐습니다.

다른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내려간 뒤에도 성읍리는 토벌대의 앞쪽 기지로 남았습니다. 이 때문에 무장대는 성읍리를 ‘토벌대 편’으로 보았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441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쪽
1월 13일기록으로 확인

수색대가 떠난 틈을 공격

군 1개 소대와 경찰 약 30명, 민보단 특공대가 산으로 나간 사이 무장대가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무장대는 마을 밖 보초를 죽이고 약 두 시간 동안 집을 돌며 식량을 빼앗았습니다. 먹을 것을 바로 내놓지 않은 주민도 살해됐고 성읍국민학교가 불탔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쪽
가족 피해기록으로 확인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살해

강석권의 가족은 아들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아내·딸·며느리 등 여러 가족이 함께 희생됐습니다.

확인 명단에는 보초를 서던 주민뿐 아니라 7살 어린이와 노인도 있습니다. 가족 관계만으로 공격한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9쪽
다음 날나누어 판단

군경의 보복 총살

1월 14일 군경은 무장대와 연락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과 ‘도피자 가족’을 총살했습니다.

민보단원에게 창으로 찌르게 강요한 뒤 총살한 사례도 보고서에 적혀 있습니다. 무장대 공격의 피해가 군경의 재판 없는 보복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7쪽
숫자와 날짜확인 범위 주의

38명·49명과 표의 오자

마을 비석은 38명, 추가 보고서 표는 관련 희생 49명을 적습니다.

49명에는 후유증 사망과 미신고자, 보복 관련 피해가 섞여 있어 38명과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추가 보고서 표 머리의 1948년은 본문과 공식 일지의 1949년과 맞지 않아 오자로 처리합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442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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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어디에 적혀 있나요?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441~442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296~299쪽(관련 명단 49명) · 공식 사건일지 1949.01.13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마을을 지키는 일과 상관없는 주민까지 죽이고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강요한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비석의 38명은 공격 당일을 중심으로 한 수이고, 추가 보고서 49명은 뒤에 숨진 사람·미신고자·보복 피해를 함께 적은 관련 명단입니다. 같은 기준의 숫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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