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자료에서 확인남로당 무장조직

생년 미상~1949

김용관金龍寬

이 사람이 맡은 일제주도당에서 소식과 주장을 알리는 책임자 · 시기별 제주도당 책임자

1947년 3·1 사건 뒤 남로당의 대책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1948년 미군 보고에는 제주도당의 소식과 주장을 알리는 책임자로 나옵니다. 사람들을 모으고 정치 활동을 알리는 일을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자료마다 맡았다는 자리와 때가 달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01

4·3 전에는 무엇을 했나요?

  • 1947년 3월 5일 만들어진 ‘제주도 3·1사건 대책 남로당 투쟁위원회’의 대표로 뽑혔습니다.
  • 추가 조사보고서에는 1946년 6월부터 1947년 1월까지 하귀국민학교 교장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02

4·3 때 어떤 일을 맡았나요?

3·1 사건 뒤 대책 조직을 이끎

3·1 사건 때 경찰이 총을 쏜 뒤 남로당 제주 조직의 대책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총을 쏜 사람을 벌하고 경찰에 잡힌 사람을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남로당의 주장과 소식을 알리는 일

1948년 6월 20일 미군이 만든 ‘제주도 남로당 조사보고서’에는 제주도당의 선전부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선전부장은 조직의 주장과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책임자입니다.

어느 시기에는 제주도당 책임자

정부 보고서가 가져온 남로당 쪽 간부 명단에도 제주도당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정부 보고서는 이 명단이 서로 다른 때의 책임자들을 한꺼번에 적은 것으로 봅니다.

03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1. 진압 작전 중 총에 맞아 숨졌다는 발표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는 김용관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를 ‘남로당 당수’, 곧 가장 높은 책임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군이 발표할 때 쓴 말입니다. 정확히 언제 어떤 자리를 맡았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04

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요?

아직 모르거나 조심해서 읽을 부분

1947년 대책 조직 대표, 1948년 선전부장, 어느 시기의 제주도당 책임자라는 기록은 서로 다른 때의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맡았다고 적지 않았습니다. 총에 맞아 숨졌다는 발표 뒤 시신을 어떻게 했는지와 가족 이야기는 첨부 보고서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자료에서 찾기

김용관은 어느 자료에 나오나요?

자료 이름과 실제로 나오는 쪽수를 적었습니다. 여러 쪽에 나뉘어 있으면 모두 볼 수 있게 범위를 적었습니다.

자료 이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어디에 나오나요?
113, 182~183, 333쪽
무엇을 알 수 있나요?
3·1 사건 대책 조직 대표, 선전부장과 제주도당 책임자 기록, 1949년에 총으로 쏴 죽였다는 발표
자료 이름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어디에 나오나요?
교육계 피해실태 556쪽
무엇을 알 수 있나요?
하귀국민학교 교장이었던 일과 남로당 주요 간부였다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