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자료에서 확인남로당 무장조직

1923년경~사망연도 미상

이삼룡李三龍

이 사람이 맡은 일남로당 제주도당 정치 책임자 · 신촌 회의 참가자

무장공격을 정한 회의에서 공격에 찬성한 12명 중 한 사람입니다. 4월 3일 뒤에는 김달삼과 함께 대정면 신평리에 숨겨 둔 남로당 장소에서 정치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훗날 일본에서 자신들이 당시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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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전에는 무엇을 했나요?

  • 정부 조사단이 2002년에 말을 들었을 때 79세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1923년 무렵 태어난 것으로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이삼룡은 신촌 회의에서 이종우·김달삼 등과 함께 무장공격에 찬성한 12명 중 한 명이었다고 직접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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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때 어떤 일을 맡았나요?

공격을 정한 회의에서 찬성

제주도당과 각 지역 책임자 19명이 모인 회의에서 무장공격에 찬성했습니다. 김달삼이 먼저 공격 이야기를 꺼냈고, 찬성 12명과 반대 7명으로 나뉘었다고 자세히 말했습니다.

정치 일을 맡음

4월 3일 뒤 김달삼과 함께 대정면 신평리에 마련한 남로당의 숨은 장소에 머물며 정치 일을 맡았다고 밝혔습니다.

지도부가 잘못 판단했다는 증언

서울의 남로당 중앙조직이 내린 명령은 없었고 제주 조직이 스스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군과 경비대가 어떻게 나올지, 싸움이 오래 이어질지를 예상하지 못한 채 김달삼의 ‘무력으로 싸우자’는 주장에 끌려갔다고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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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1. 일본으로 도망감

    정부 보고서는 그가 무장투쟁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피했고 도쿄 아라카와구에서 살았다고 적었습니다.

  2. 정부 조사단에 당시 일을 말함

    79세 때 도쿄에서 정부 조사단과 이야기했습니다. 신촌 회의에 누가 있었는지, 몇 명이 찬성했는지, 김달삼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들이 당시 상황을 어떻게 잘못 보았는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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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사실로 확인됐나요?

아직 모르거나 조심해서 읽을 부분

그의 삶은 2002년에 정부 조사단과 이야기한 때까지만 확인됩니다. 언제 숨졌는지, 2002년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보고서에 없어 짐작하지 않습니다. 그는 회의에 직접 참석한 중요한 증언자입니다. 하지만 회의록이 아니라 54년 뒤에 기억을 떠올려 말한 것이므로 다른 자료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자료에서 찾기

이삼룡은 어느 자료에 나오나요?

자료 이름과 실제로 나오는 쪽수를 적었습니다. 여러 쪽에 나뉘어 있으면 모두 볼 수 있게 범위를 적었습니다.

자료 이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어디에 나오나요?
113쪽 각주, 158~159쪽
무엇을 알 수 있나요?
김달삼이라는 이름의 유래, 신촌 회의, 정치 책임자로 한 일, 일본에서 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