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9년 1월 17일 아침, 무장대가 북촌리 부근의 군 트럭을 기습해 군인 2명이 숨졌습니다. 전날 동복리에서도 군인이 숨진 기습이 있었습니다. 제2연대 제3대대 군인들은 북촌리 집들을 불태우고 주민 약 1,000명을 학교에 모은 뒤 여러 밭으로 끌고 가 총살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1월 17일 희생 270명, 다음 날 함덕 모래밭의 북촌리 주민 29명을 더해 이틀간 299명을 확인했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두 사람은 어릴 때 북촌리 집단학살을 겪었습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사람들 앞에서 말했습니다.고완순·윤옥화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67~173쪽 · 제15회 4·3증언본풀이 마당 ↗
북촌리에서는 어떤 일이 차례로 벌어졌나요?
기습, 시신 운구, 주민 집결, 집단총살, 숫자 확인을 시간순으로 놓아 한 사건이 다음 범죄의 핑계가 되는 과정을 봅니다.
이틀에 걸친 무장대 기습
1월 16일 동복리, 17일 북촌리 부근에서 군 차량이 기습받았고 추가 조사는 이틀간 군인 4명 사망을 확인했습니다.1월 17일 북촌리 마가리동산 기습에서는 제2연대 군인 2명이 숨졌습니다. 무장대가 군인을 매복 공격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시신을 옮긴 주민 8명 총살
주민들은 숨진 군인의 시신을 함덕 부대까지 옮겼지만, 군은 경계 책임을 물어 8명을 총살했습니다.시신을 운구한 사람 가운데 경찰 가족 한 명만 제외됐다고 추가 보고서는 적습니다. 주민이 기습에 참여했는지 재판으로 가리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집을 태우고 약 1,000명을 학교에 모음
군인들은 약 400채의 집을 태우고 어린이·노인·환자를 포함한 주민을 학교 운동장에 모았습니다.군경 가족을 따로 세운 뒤 주민을 수십 명씩 당팟·탯질·너븐숭이 등 여러 밭으로 끌고 가 총살했습니다. 오후 늦게 중지 명령이 올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제2연대 제3대대 지휘 아래 실행
추가 조사는 제3대대장 정준철의 지시 아래 중대급에서 총살이 실행됐다고 정리했습니다.총살 중지는 연대장이 처음부터 바로 막은 것이 아니라, 함덕리 대청단장의 요청을 대대장이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는 새 증언도 실렸습니다.
1월 17일 270명, 이틀간 299명
추가 조사에서 1월 17일 희생 270명의 신고 명단이 확인됐습니다.270명은 북촌리 251명과 다른 마을 주민 19명입니다. 다음 날 함덕 모래밭에서 숨진 북촌리 주민 29명을 더하면 이틀간 북촌리 주민은 299명입니다. 그래서 ‘약 300명’과 비슷해 보여도 기준은 다릅니다.
기습은 학살 허가가 아님
무장대가 군인을 죽인 일은 주민 전체를 재판 없이 죽여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이 페이지는 무장대의 기습 책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공격에 참여했는지 확인하지 않고 가족과 어린이까지 죽인 군의 보복 책임도 같은 기준으로 밝힙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413~414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67~173쪽(1월 17일 270명, 이틀간 북촌리 주민 299명)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군인을 기습해 살해한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주민을 개인별 조사나 재판 없이 보복으로 죽인 책임은 제2연대 제3대대의 지휘자와 실행 군인에게 있습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약 300명’은 오랫동안 전해진 어림수입니다. 추가 조사의 270명은 1월 17일 사건 신고 명단이고, 299명은 다음 날 함덕에서 숨진 북촌리 주민까지 더한 수라 기준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