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의 진압·희생D ·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를 대조한 기록

다랑쉬굴 질식 희생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

군의 수색을 피해 굴에서 살던 주민 11명이 불 연기에 질식해 숨졌고, 44년 뒤 생활용품과 함께 발견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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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8년 12월 18일 제9연대는 다랑쉬굴에 숨어 있던 하도리·종달리 주민들을 발견했습니다. 군은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넣었고, 여성 3명과 9살 어린이를 포함한 11명이 숨졌습니다. 1992년 굴에서 유골 11구와 솥·그릇·고무신·농기구 같은 생활용품이 발견됐습니다. 한 유골 곁에는 철모·군화·창·대검도 있어, 모든 사람의 역할이 같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02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공식 사건일지와 현장 조사 · 기록과 말을 쉽게 줄인 내용
발굴 때 나온 생활용품은 가족들이 굴에서 숨어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편 무장 장비 곁의 유골도 있어 개인별로 피난 주민인지 무장 활동 관계자인지 더 나누어 확인해야 합니다.
다랑쉬굴 희생 기록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299~301쪽 · 공식 사건일지 1948.12.18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5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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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보다 깊이 보기

다랑쉬굴의 11명은 누구였고, 무엇이 발견됐나요?

숨은 이유, 작전 방법, 유골과 생활용품, 무장 장비 한 점, 발굴 뒤 처리까지 나눠 봅니다.

숨은 사람들나누어 판단

하도리·종달리 주민 11명

여성 3명과 9살 어린이가 포함된 주민들이 겨울 굴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집과 마을을 떠나 수색을 피해 숨어 있었습니다. 보고서는 이들을 ‘도피 입산자’로 적지만, 그 말만으로 모두 무장대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300쪽 · 공식 사건일지
12월 18일기록으로 확인

굴 입구의 불과 연기

토벌대는 굴 안으로 불 연기를 넣었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질식해 숨졌습니다.

무장 충돌로 숨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오게 하는 작전 과정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숨진 사건으로 공식 일지는 기록합니다.

자료 · 제주4·3평화재단 공식 사건일지 1948.12.18
발굴 물건기록으로 확인

솥·그릇·고무신·농기구

1992년 유골과 함께 오랫동안 생활한 흔적이 되는 많은 살림도구가 발견됐습니다.

물허벅, 주전자, 수저, 가마솥, 농기구 등은 사람들이 단순히 전투를 위해 잠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굴에서 생활했음을 보여줍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300쪽
개인별 빈칸확인 범위 주의

한 유골 곁의 철모와 무기

따로 떨어진 한 유골 옆에는 철모·군화·창·대검이 있었습니다.

이는 굴 안 사람 중 누군가가 무장 활동 또는 경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물건의 정확한 주인과 실제 행동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자료 · 진상조사보고서 300쪽의 발굴품 기록
발굴 뒤나누어 판단

45일 만에 화장해 바다에 뿌림

발굴된 유골은 충분한 감식과 보존을 거치지 못하고 빠르게 화장됐습니다.

추가 보고서는 이 과정 때문에 더 자세한 신원·사망 원인 조사의 기회를 잃었다고 설명합니다. 발견 뒤의 처리도 사건 기록의 일부입니다.

자료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5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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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어디에 적혀 있나요?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299~301쪽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501쪽 · 공식 사건일지 1948.12.18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굴 안 사람을 안전하게 나오게 할 방법을 쓰지 않고 불과 연기로 숨지게 한 책임은 제9연대 작전 지휘와 실행 쪽에 있습니다. 굴 안 개인의 무장대 관계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골 11구의 신원은 알려졌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무장대 가입이나 지원 행동은 같은 수준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곁의 물건만으로 소유자를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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