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함덕에 있던 제9연대는 조천면 주민들에게 과거 활동을 말하고 스스로 나오면 살려 주고 ‘양민증’을 주겠다고 알렸습니다. 약 200명이 함덕국민학교로 찾아갔습니다. 12월 21일 군은 이들을 토벌작전에 데려간다고 말한 뒤 나눴습니다. 추가 조사에서 96명은 박성내에서 총살된 것으로, 47명은 군법회의로 넘겨진 뒤 많은 사람이 육지 형무소에서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이만식은 토벌작전에 다녀오면 양민증을 준다는 말을 믿고 스스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농업학교에서 손이 묶인 뒤 박성내로 끌려갔고, 총을 맞아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빠져나왔다고 말했습니다.박성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만식출처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45~147쪽 · 이만식 증언 2006년 7월 20일
박성내에서는 무슨 일이 차례로 벌어졌나요?
이 사건은 ‘150명이 총살됐다’는 한 문장으로 끝내면 사람을 어떻게 모았는지, 무엇을 자수했는지, 미군 기록은 어디까지 말하는지, 뒤의 조사에서 숫자가 왜 달라졌는지를 놓치게 됩니다.
제9연대가 제주를 떠나기 직전
1948년 12월 말, 제주 주둔군은 제9연대에서 제2연대로 바뀔 예정이었습니다.정부 보고서는 제9연대가 떠나기 전 눈에 보이는 작전 성과를 크게 만들려 했다고 봅니다. 12월 17일 미군 정보보고도 제9연대가 제2연대의 성과에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작전을 벌였다고 적었습니다.
‘스스로 나오면 살려준다’고 알림
군은 죄가 있든 없든 스스로 나오면 살려 주고 양민증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주민 약 200명이 함덕국민학교의 군 주둔지로 찾아갔습니다. 주민들이 말한 내용은 해방 뒤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 활동, 1947년 발포 항의 시위, 무장대가 마을을 장악했을 때 요구에 따라 시위에 나가거나 식량을 준 일 등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귀순공작대’라는 특별조직
1949년 제주지방법원 판결문에서 제9연대의 ‘군 귀순공작대장’ 최희송 소위가 확인됩니다.‘귀순공작’은 숨어 있거나 관련됐다고 여긴 사람에게 스스로 나오라고 권하는 작전입니다. 군이 주도했고 경찰과 민보단이 도왔습니다. 중산간에서 내려온 사람뿐 아니라 조천리·함덕리 같은 바닷가 마을 주민도 대상이었습니다.
토벌에 데려간다고 속인 뒤 결박
군은 주민들을 제주농업학교로 데려간 뒤 손을 철사로 묶고 박성내로 옮겼습니다.주민들은 열 명 또는 다섯 명씩 묶여 차에 태워졌습니다. 박성내 냇가와 절벽에서 총격이 이뤄졌고, 시신에는 휘발유가 뿌려져 불이 붙었습니다. 이만식은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이 과정을 증언했습니다.
150명에서 96명·47명으로
뒤의 조사는 박성내 현장 96명, 군법회의 47명, 전체 143명의 이름과 마을을 확인했습니다.2003년 정부 보고서와 사건일지는 박성내에서 150명이 숨졌다고 적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희생자 명단과 마을별 자료를 다시 맞췄습니다. 숫자가 줄었다는 뜻보다, ‘현장에서 숨진 사람’과 ‘군법회의로 넘겨진 사람’을 나누고 이름을 확인한 결과로 읽어야 합니다.
작전 분위기는 기록, 박성내 실행은 직접 기록하지 않음
미군 보고는 같은 부대의 같은 시기 작전을 기록했지만 ‘박성내’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12월 24일 미군 정보보고는 제9연대 2대대가 제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 작전에서 12월 18일 130명을 죽이고 50명을 붙잡았다고 적었습니다. 날짜가 박성내 사건보다 사흘 빠르므로 이 숫자를 박성내 희생자 수로 바꾸어 쓰면 안 됩니다. 이 기록은 당시 부대가 큰 사망자 수를 작전 성과로 보고하던 상황을 보여 주는 주변 자료입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298~299쪽(150명으로 기록)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45~147쪽(현장 희생 96명·군법회의 47명·전체 143명 확인)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주민이 과거 시위에 참여했거나 무장대 요구로 식량을 주었다면 그 행동은 사람마다 증거를 확인하고 법으로 판단해야 했습니다.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약속해 사람을 모은 뒤 개인의 행동을 가리지 않고 죽인 책임은 제9연대와 작전을 함께 도운 경찰·민보단에 있습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2003년 정부 보고서와 공식 사건일지는 박성내 희생을 150명으로 적었습니다. 2020년 추가 조사는 피해자 이름과 마을을 다시 맞춰 현장 희생 96명, 군법회의 피해 47명, 전체 143명으로 확인했습니다. 미군 기록에서는 제9연대의 같은 시기 작전은 찾았지만 ‘박성내’라는 장소와 12월 21일 실행을 직접 적은 문서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