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지리에서는 1948년 5월 13일 무장대가 마을과 지서를 공격해 건물과 집 약 100채를 불태웠습니다. 미군 보고에는 경찰 1명과 주민 6명 사망, 주민 1명 실종, 주민 7명 납치가 적혀 있습니다. 그해 12월에는 마을에서 내려온 저지리 주민 20여 명이 경찰에 끌려가 고산리에서 총살됐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해자의 사건을 한 덩어리로 만들지 않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영상으로 남긴 주민의 말 · 기록과 말을 쉽게 줄인 내용
제주MBC ‘나는 말한다’ 저지리 편에는 고문 피해와 무장대 공격에 대한 주민의 말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저지리 주민들제주MBC ‘나는 말한다’ · 저지리 ↗
한 문장보다 깊이 보기
저지리에서는 어떤 사건들이 서로 이어졌나요?
무장대 공격, 학교와 집의 소실, 마을을 떠난 주민의 수용, 경찰 총살을 시간순으로 나눕니다.
5월 13일기록으로 확인
무장대 약 150명의 마을·지서 공격
미군 보고에는 저지지서가 불타고 경찰 1명과 주민 6명이 숨졌다고 적혀 있습니다.주민 1명은 실종, 7명은 납치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추가 조사에서는 숨진 경찰 김인하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마을 피해기록으로 확인
학교와 집 약 100채가 불탐
저지국민학교 본관과 지서가 쓰던 향사, 민가 약 100채가 불탔습니다.학교는 뒤에 마을이 비워지면서 문을 닫았고, 학생들은 한동안 고산국민학교로 옮겨 다녔습니다. 하늬골은 돌아오지 못한 마을로 남았습니다.
12월의 다른 사건기록으로 확인
내려온 주민 20여 명을 골라 총살
12월 6일 경찰은 고산국민학교에 있던 저지리 명이동 주민 20여 명을 호명했습니다.이들은 청수리 주민 6명과 함께 다음 날 고산리 천주교회 인근 밭에서 총살됐습니다. 5월의 무장대 공격과는 다른 가해자가 저지른 다른 사건입니다.
전체 숫자나누어 판단
저지리 관련 108명
추가 보고서는 사망 62명, 행방불명 45명, 후유장애 1명으로 집계했습니다.108명은 4·3 기간 전체의 여러 사건을 모은 수입니다. 5월 13일 한날의 사망자 수로 쓰면 안 됩니다.
증언 확인확인 범위 주의
한 사람의 말도 날짜별로 나누기
영상에 나온 고문 피해와 무장대 공격 피해는 각각 이름·날짜·장소를 맞춰야 합니다.확인 작업이 끝나면 주민별로 독립된 사건 카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문서로 확인된 큰 흐름과 숫자의 범위만 밝힙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 113~114·127·246·552~553·653~654쪽 · 미군정 G-2 1948년 5월 보고 · 제주MBC ‘나는 말한다’ 저지리 편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마을과 지서를 공격하고 주민을 죽이거나 납치한 책임은 무장대에 있습니다. 내려온 주민을 골라 재판 없이 죽인 책임은 경찰에 있습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5월 13일 미군 보고의 주민 피해 숫자는 사람별 이름 대조가 더 필요합니다. 12월 7일 희생은 고산리의 여러 소개민 사건과 함께 명단을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