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1948년 1월, 남로당 제주도당 조직부의 연락을 맡던 김생민이 경찰에 붙잡힌 뒤 조직 정보를 말했습니다. 경찰은 1월 22일 새벽 신촌리를 포위하고 주민들을 학교에 모은 뒤 대규모로 연행했습니다. 미군 보고는 비밀회의에서 106명을 잡고 ‘폭동 지령 문서’를 찾았다고 적었지만, 주민들은 경찰의 말을 듣고 집에서 나왔다가 붙잡혔다고 증언했습니다.
기록과 사람들의 말에는 어떻게 나오나요?
경찰서장이 이야기한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 모였는데 주민 수백 명이 경찰에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남로당에 가입했는지 캐물으며 고문했다고 말했습니다.허춘섭 · 당시 신촌리 주민출처 · 진상조사보고서 154~155쪽
신촌리에서는 누구를 찾았고, 누구까지 붙잡혔나요?
‘남로당 회의를 덮쳤다’는 경찰 보고와 ‘경찰 강연인 줄 알고 나갔다’는 주민의 말을 나란히 놓고 봅니다.
연락책 김생민이 붙잡힘
김생민은 남로당 제주도당 조직부의 연락을 맡았고, 경찰 조사 뒤 간부들의 조직 관계를 말했습니다.신촌리는 김생민의 고향이자 남로당 조직부가 숨어 활동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조직부장은 김달삼이었습니다. 경찰은 김생민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신촌리를 덮쳤습니다.
106명에서 221명으로 늘어난 연행
미군 보고에는 1월 22일 106명, 1월 26일까지 모두 221명이 붙잡혔다고 적혀 있습니다.보고는 이들을 ‘불법회의 참가자’로 적고, 등사기와 여러 서류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63명은 조사 뒤 풀려났고, 남은 사람들의 정치 관계도 모두 적혀 있지는 않았습니다.
‘경찰서장 이야기를 들으러 나오라’
허춘섭은 경찰 말을 믿고 학교에 갔다가 주민 수백 명과 함께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했습니다.노인과 어린이, 몸이 불편한 사람을 뺀 많은 주민이 트럭에 실렸습니다. 경찰은 남로당 가입 여부를 물으며 폭행했고, 실제 좌익 활동을 하던 사람들 상당수는 미리 피해 있었다는 증언도 남았습니다.
‘폭동 지령’ 원본은 없음
2월 중순부터 3월 5일 사이 폭동을 일으키라는 문서는 원본과 작성자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미군 보고는 이 정보를 C-3으로 매겼습니다. 이는 출처와 내용이 모두 아주 확실한 정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뒤에 확인된 무장공격 결정 시기와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밀조직과 무더기 연행은 다른 문제
남로당 비밀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이 모든 신촌 주민을 범죄자로 만들지는 않습니다.경찰은 개인마다 한 일을 확인하고 증거가 있는 사람만 법에 따라 조사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직을 찾는 수사와 주민 전체를 의심해 고문한 행동을 나눠 보아야 합니다.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나요?
- 어디에 적혀 있나요?
-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152~156쪽 · 미 24군단 정보보고 제752·753호 · 미 971방첩대 1948년 2월 보고
- 누구의 어떤 책임인가요?
- 남로당이 비밀조직을 만들고 연락망을 운영한 일은 확인해야 합니다. 동시에 경찰이 핵심 인물을 놓친 뒤 일반 주민까지 속여 모으고 고문한 일도 따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 경찰이 찾았다는 ‘폭동 지령 문서’의 원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미군도 이 정보의 믿을 만한 정도를 낮게 표시했습니다.